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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은행마다 ‘바가지 공세’…소비자는‘봉’ - 캐시카우된 직불카드

한경비즈니스 | 입력 2009.10.29 15:06

 




미국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피터 민스(59) 씨는 최근 은행에서 뜻하지 않은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최근까지 공직에서 일하다 공부를 더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한 민스 씨는 돈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신용카드 대신 직불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잔액이 바닥난지 모르고 직불카드를 썼다가 엄청난 액수의 수수료, 일종의 벌금(?)을 청구 받았다.

그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데 4.14달러, 극장 표 구매에 6.50달러 등 하루에 총 일곱 군데에서 50달러어치를 직불카드로 결제했다. 이후 와코비아 은행에서 날아온 청구서에는 잔액을 초과해 사용한 금액 50달러 외에 초과 인출 수수료 238달러가 청구돼 있었다. 초과 인출 건당 34달러의 수수료가 부과된 것이다.

민스 씨는 잔액이 바닥났다는 아무런 경고도 받지 않은 데다, 초과 인출해 사용한 금액도 모두 소액인데도 그 같은 수수료가 부과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거래 은행인 와코비아 은행에 항의했지만 '허사'였다. 이미 계약서에 그렇게 하기로 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직불카드 초과 인출 수수료 문제(over-drafted fee)가 금융계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직불카드는 원래 은행 잔액 내에서 소비하도록 고안된 카드. 그러나 미국에서는 2000년 이후 직불카드 사용자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약간의 초과 인출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잔액 부족으로 직불카드 사용이 갑자기 중지됐을 경우 고객들이 겪게 될 당황스러운 상황을 방지해 주기 위한 서비스라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서비스의 가격이 비싼 데다 서비스를 받을 고객들에게 동의 절차를 묻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서비스 가격을 부풀리기 위해 편법을 사용한 흔적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고객들의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경제 위기 과정에서 기존 공급자 위주 금융계 관행을 소비자 위주로 완전히 바꾸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번 문제 해결을 그 시발점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미 의회 지도자들도 이미 개선 방향들을 내놓고 있다.

79센트 결제에 35달러 수수료
그러나 주 수입원 하나를 잃게 될 은행들의 반발이 워낙 강해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직불카드 초과 인출이 이슈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들은 초과 인출 금액이 1달러든 2달러든 인출 건당 평균 34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것을 수수료가 아니라 이자라고 생각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된다. 만약 20달러를 초과 결제해 2주 만에 34달러의 수수료를 물었다면 연이율로 따지면 4000∼5000%의 이자를 문 셈이 된다.

신용카드 연체 이자율이 최고 연 30%인 것과 비교할 때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존폐의 기로에 선 미국 은행들이 직불카드 초과 인출 수수료 수입을 새로운 '캐시 카우(cash cow)'로 여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시장조사 기관인 모에브스(Moebs)에 따르면 미 은행들이 올해 각종 수수료로 거둬들일 수입 규모는 총 385억 달러(약 46조2000억 원)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직불카드 초과 인출 수수료를 비롯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용 수수료, 인터넷 거래 수수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신문은 수수료 수입이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주요 이유로 수수료 인상과 함께 직불카드 사용 급증을 들었다. 수수료 단가가 오른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소득수준 내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고안된 직불카드의 사용 증가가 어떻게 초과 인출 수수료 수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신문은 은행들이 직불카드 신청자들에게 초과 인출 서비스를 받을 것인지 묻지도 않고, 초과 인출 시에도 경고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수료 수입을 늘리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2008년 연구 자료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의 41%가 직불카드를 만들면 자동으로 초과 인출을 허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묻지도 않고 잔액 부족 상황에서 초과 구매가 가능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형 은행의 77%가 이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의 피해자 중 하나가 메릴랜드 주에 사는 루스 홀튼 씨다.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동생을 돌보고 있는 그는 2년 전 어느 날 동생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은행에 직불카드 초과 인출 수수료 300달러를 빚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의 하나는 79센트짜리 결제에 35달러의 수수료가 붙은 것이었다.

홀튼 씨는 BoA 은행에 찾아가 끈질지게 동생의 직불카드 사용 한도를 잔액 내로 제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은행은 최근에야 이를 허용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은행의 처사에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면서 "최소한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문제가 있는 고객들에게는 그 정도의 방어막은 만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문은 은행들이 한발 더 나아가 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법, 즉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컨대 직불카드 계좌에 잔액 300달러를 가진 사람이 토요일에 약국(16달러)과 식당(120달러)에서 결제하고, 일요일에 ATM기에서 350달러를 인출했다고 가정하자. 정상적인 정산 절차를 거친다면 이 사람은 토요일에는 초과 인출이 없고 일요일 인출 때 186달러의 초과 인출이 발생하게 돼 월요일 잔액은 초과 인출(186달러)과 그에 붙는 수수료(35달러)를 합해 총 마이너스 221달러가 된다.

오바마 행정부, 범죄·사기로 비난
그러나 직불카드 사용 순서를 바꾸면 잔액 내용이 크게 바뀐다. 즉, 액수가 가장 많은 것부터 계산해 토요일에 350달러를 인출하고 일요일에 두 가지 소액 결제를 한 것으로 바꾼다고 치자.

이 경우 이미 토요일부터 초과 인출이 발생해 수수료가 붙고 일요일 결제 건수 두 건에도 각각의 수수료가 더 부과된다. 결과적으로 월요일 잔액은 마이너스 291달러가 된다.

플로리다에 사는 랄프 토네스 씨는 이런 식의 방식으로 BoA가 수수료 수입을 늘리는 편법을 썼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은행연합(ABA)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피하고 있다. 다만, 최근 1000명의 직불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가 최근 1년간 초과 인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으며 초과 인출 고객 18% 중 대부분(96%)은 서비스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며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미 워싱턴포스트지는 미 정부와 의회가 2001년 이후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업계의 논리에 밀려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최근 크게 바뀌고 있다. 미 민주당 정부는 이 같은 은행들의 관행에 대해 '범죄(criminal)'나 '사기(rip-off)'라는 단어들을 동원하며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내 필요한 입법을 마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거론되는 방안은 두 가지다. 우선 은행들이 직불카드를 발급할 때 신청자들에게 초과 인출 서비스를 받을 것인지를 의무적으로 묻도록 하는 방법이다. 미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 도드 의원(민주당)은 "만약 초과 인출 서비스 받기를 거부한 사람이 잔액을 초과해 결제하려고 할 경우 거래가 중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롤린 맥로린 의원(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초과 결제 때마다 은행들이 고객들로부터 승인을 받도록 하는 안을 냈다. 두 번째는 수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하하는 방법이다.

모에브스의 창업자 마이클 모에브스는 "어떤 방안이든지 직불카드를 발급하는 은행이나 다른 금융회사들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가 소비자 금융 주권을 되살린다는 '개혁' 명분과 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한 '현실의 벽' 사이에서 어떤 타협안을 내게 될지 주목된다.

박수진·한국경제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