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또다시 통화전쟁에 휘말릴 태세다. 위안화를 절상하라는 미국과 환율은 국가 주권의 영역이라는 중국 간 기 싸움이 유럽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의 빠른 경기 회복에 대해 의도적으로 위안화 절상을 막음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유지한 불공정 경쟁 덕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절상 압력의 본질은
보호무역주의라며 무역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문제는 달러 약세가 가속화되면서 위안화 절상에 베팅한 핫머니가 중국으로 속속 유입되며 인플레 우려를 촉발한다는데 있다. 경기 회복을 떠받쳐 온
통화팽창 정책에 설상가상의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위안화 절상 문제가 세계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중국 경제의 회복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4분기 경제 운용 정책 기조에 '인플레 기대감 견제'를 넣음으로써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인플레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이 같은 고민을 엿보게 한다. 중국 등이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흔들면서 촉발시킨 달러 약세가 되레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이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확대되는 위안화 전선= 올 들어 위안화 절상 압박은 지난 8월 미국의 국제경제연구소가 낸 보고서가 시발점이라는 분석이다. 위안화 가치를 달러화 대비 40% 절상해야 한다는 해묵은 주장을 다시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10월 초 터키
이스탄불에서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들이 위안화 절상 압박 공조에 나선데 이어 미국 재무부는 10월 15일 발표한 반기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안화 절상 압박 수위를 종전보다 높였다.
급기야 달러 약세에 따른 유로화 가치 급등으로 수출에 비상이 걸린 유럽도 본격적으로 위안화 절상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장 클로드 트리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국 재무장관으로 구성된 유로그룹 의장을 맡고 있는 존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조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통화담당 집행위원과 함께 연내 중국을 방문, 환율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 2007년에도 베이징에서 중국 당국과 위안화 문제를 협의한 이들의 목적은 위안화 절상 압박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중국 당국이 위안화 환율을 달러화에 사실상 고정한 때문에 유로화 가치가 위안화 대비로도 2월 이후 19% 이상 오르면서 유럽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불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장밍 국제금융연구실 부주임은 "중국의 수출 감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덕에 중국산의 해외시장 점유율이 오르면서 위안화 절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올 상반기 중국의 수출은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9월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15.2% 감소에 그쳐 감소율이 전달 대비 8.2%포인트 둔화되는 등 개선 추세가 뚜렷하다. 특히 3분기 성장률이 8.9%로 작년 3분기(9%) 이후 최고치를 기록, 경기 회복 추세가 뚜렷한 모습을 보이면서 위안화 절상 압박은 가중될 전망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위안화 절상 베팅= 위안화 절상 압력은 외환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지난 10월20일 상하이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위안화 1년물 선물환율은 지난해 8월 1일 이후 14개월여 만에 최저치(위안화 강세)인 달러당 6.5440위안까지 떨어지는 등 위안화 절상 기대감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작년 말만 하더라도 위안화가 1년 뒤 절하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선물 환율이 현물 환율보다 높았었다.
하지만 위안화 절상 기대감이 커지자
외화보유액도 올 들어 9월까지 3266억 달러 증가한 2조2726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핫머니 유입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수익을 노리고 싼 달러를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것)를 노린 핫머니(단기 투기자금)라는 분석이다. 중국의 외화보유액은 9월에만 하루 20억 달러 이상씩 늘었다.
하지만 중국 위안화 현물 환율은 작년 7월 이후 달러당 6.82~6.83위안에서 사실상 고정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05년 7월
변동 환율제 도입 이후 20% 절상됐던 위안화의 상승 흐름이 1년 이상 멈춰서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10월 20일 인민은행이 고시하는 위안화 환율을 통해 유로화 대비 위안화 가치를 무려 0.78% 떨어뜨렸다. 지난 2월 유로화당 8.57위안 하던 위안화 가치가 10.21위안까지 밀린 것이다.
◇달러 기축통화 견제의 부메랑= 중국증권보는 "달러 약세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이면서 거대한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러니는 달러 약세가 중국이 주도한 달러 기축통화 체제 흔들기로 촉발된 측면이 강하다는데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무역 거래에 자국 통화 사용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나 남미 좌파 국가들이 공동 통화 수크레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달러 약세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여기에 경기 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딘 미국과 일본이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경기 회복이 빠른 아시아에서 금리 인상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핫머니들이 달러 약세에 베팅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글로벌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약달러를 용인하는 미국의 입장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아시아 각국에 수출 주도 경제 틀에서 벗어나라고 일침을 가하면서 아시아의 환율 방어 문제를 거론한 게 대표적이다.
지금의 금융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장기적인 과제로 부상한 달러 기축통화 체제의 변화와 글로벌 무역 불균형 해소가 세계 경기 회복 공조를 분열시켜 단기적인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되는 양상이다.
◇딜레마에 빠진 중국= 중국은 위안화 절상 압력에 대해 굴하지 않겠다는 종전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위안화 환율 문제는 중국이 주도하고, 통제 가능하고, 점진적으로 해결한다는 종전의 3대 원칙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장밍 부주임은 "선진국들이 자국의 통화를 절하하거나 경쟁국의 통화 절상에 압력을 가해 경기 회복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위안화 절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중국 중앙재경대 한푸링 교수)"는 게 중국 측의 판단이다. 올 들어서만 세계가 중국에 취한 무역 제재는 88건으로 전 세계 무역 제재의 57%를 차지한다.
차이나데일리는 높아지고 있는 위안화 절상 압력에 보호무역주의가 둘러싸고 있다며 환율 문제는 본질적으로 보호무역주의라고 단언했다. 이어 세계경제가 이제 회복되는 시점에서 무역 전쟁까지 날 수 있다며 이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달러 약세가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보유 미국 달러 자산 가치를 하락시키고 △달러 표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중국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위안화 환율을 고정시키는 데 따른 부작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이 최근 철강 시멘트 등 6대 과잉생산 업종에 대해 원칙적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불허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과잉 공급이 저가 수출로 이어져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외화 유출이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을 손보고 있는 것도 넘치는 달러를 밖으로 빼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덜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위안화 딜레마에 또다시 빠져들고 있다.
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