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이민이나 유년기의 해외 경험을 통해 일찌감히 글로벌한 인물로 키워진 워킹우먼들의 사례는 많다. 프랑스 로레알 본사에서 근무하다 올해 한국으로 부임한 박원 상무도 이민을 통해 교육 받고 글로벌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케이스. 그러나 그녀와 이야기하다 보면, 워킹맘의 성공에는 유창한 언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배워야 할 인생의 태도가 따로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밝고 낙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를 만난다.
긍정적 에너지와 배짱으로 무장한 워킹우먼
박원 상무는 올해 초 프랑스 로레알 본사에서 한국으로 부임했다. 병원·
약국 화장품 분야를 담당한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얼마 전, 비쉬 신상품 론칭 행사에서였다. 당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 어눌한 말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을 담아 굉장히 적극적으로 스피치를 하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면서 '매끄러운 언어보다 적극적인
애티튜드가 한 수 위'라는 진리를 또 다시 통감했으나, '본디 샤이한' 토종 한국인에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이다. 그날 이후, 박원 상무는 꼭 만나고 싶은 글로벌 워킹우먼의 롤 모델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는 스무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처음 이민 갔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여기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도전 의지가 퐁퐁 솟아오르는 그런 느낌이었죠." 이민 초기 당연히 언어 트러블이 있었을 텐데, 그녀는 말 못하는 것 때문에 전혀 기죽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입학을 위해 학장 인터뷰를 할 때도 "난 언어가 아니라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다. 말실수를 좀 하더라도 내 아이디어가 좋으면 나를 받아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원래부터 그렇게 성격이 대범하고 긍정적이었냐 물으니, "제가 배짱이 좀 있었죠"라는 쾌활한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야 배우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심플한 사고방식은, 현재의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성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품게 하는 출발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의 커리어는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졌다.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한 주문 '오늘을 재미있게'
캐나다 대학 과정을 마치고, 그녀는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대학 시절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그들의 문화적인 취향과 크리에이티브한 사고방식 등에 감동을 받아 유럽에서 경영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었다. 혼자 파리로 건너가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그녀가 들어간 첫 직장은 제약회사였다. 당시 프랑스 약학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아, 프랑스 전반에 제약업 붐이 일어난 상태였다. 프랑스 넘버원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로 인턴을 지원했고,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되었다. 3년 넘게 몸담았던 제약 업계에서 그녀는 진지한 조사와 연구가 모든 것의 바탕임을 배웠다. 나중에 로레알로 이직하면서도, 이 깨달음이 회사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로레알 입사 후 13년 동안 그는 상품 개발에서부터 광고, 커뮤니케이션 등 모든 분야를 다 경험했다. 프랑스 내의 프로덕트 매니저에서 컨슈머 디비전의 아시아 팀으로, 또 럭셔리와 프로페셔널 분야를 돌아 한국에서 병원 약국 화장품 디비전까지 맡았으니, 로레알 내의 전 영역을 겪었다고 할 만하다. 세계 최상위 회사에서 쌓은 탄탄한 경력. 질투 날 정도로 완벽한 이 커리어에선 도무지 좌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는 단거리 선수처럼 서두르다가 시행착오를 겪었던 사회 초년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로레알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고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남과 경쟁해 이기려고만 하면, 좌절감에 빠지고 별것 아닌 일에 상처 받고 인생이 고달파지죠. 그때, 커리어만 보고 너무 안달복달할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일은 한 번 시작하면 30~40년쯤 오래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좀 느긋하게 결혼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고 자연스럽게 출산도 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가야 해요. 현재를 정말 재미있게 보내면서 말이죠."
그가 힘주어 말하는 '재미있게'라는 대목에서 유러피언식 여유가 슬쩍 연상됐다. 얼핏 외국에 살았기 때문에 저렇게 낙천적인 걸까 싶기도 했다. 하나 그녀 말이 맞다. 결사적으로 커리어에 목숨 걸다가 무언가 희생하고 또 불행해하던 선배 워킹우먼의 사례를 그동안 우리는 심심찮게 봐오지 않았나. 남자들과의 대결 구도에서 승리하는 것이 1세대 워킹우먼의 목표였고, 가정과 회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슈퍼우먼 되는 게 2세대 워킹우먼의 목표였다면, 지금의 워킹우먼에겐 과연 무엇이 중요할까. '성공보다는 조화로운 인생'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모던한 여자라면 '재미있게'라는 단어는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썩 훌륭한 주문이 될 것 같다. 하루하루를 가장 재미있게, 만족스럽게 살아간다면, 결과적으로는 누구보다 충실한 인생을 살게 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해피한 인생관에 전염된 것일까.
스마트 워킹맘의 소소한 일상 조언
에브리데이 재미있게 살고는 싶으나, 항상 바쁜 일상에 쪼들리는 (나같이) 평범한 워킹맘을 위해 일상의 조언을 구했다. 현명한 그녀의 대답은 첫째, 일을 미루지 않는다는 것. 일이 닥칠 때마다 바로바로 하다 보니 정신은 좀 없지만, 미뤄놓은 일 때문에 괴로운 일도 없단다. 일이 미뤄지면 더욱 겁이 나고 커 보이게 마련. 바로바로 해치우면 적어도 큰일은 터지지 않고, 대신 큰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두 번째 팁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무조건 웃는다는 것. 팀원들과 웃든지 가족들과 웃든지, 시덥잖은 농담을 던져서라도 크게 웃는다. 이런 의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날려야만 스스로 허덕거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일이 없어진다. 마지막 팁은 운동. 인생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하기'를 무려 20년 동안(!) 지속하고 있다.
회사와 가정을 조화롭게 병행하는 기술
박원 상무는 11년 전 결혼한 남편과 두 아들(9세, 5세)과 함께 서래마을에서 살고 있다. 로레알 프로덕트 매니저로 있을 당시 친구 집의 파티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3년간의 세계일주를 막 끝내고 돌아온 참이었다. 당시엔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남자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남편의 여유가 참 부럽다고. 그는 이번에 한국에 갈 기회가 생겼다는 말에,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프랑스의 직장을 포기했다. "한국에 갈 기회가 더 중요하니 이번에는 당신이 먼저 선택해라. 난 한국에서 직업을 다시 구하면 된다." 남편이 프랑스인이라는 게 엄청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원 상무는 그보다는 도움을 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는 첫아이를 낳은 후 해외 출장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고비를 겪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외국을 다녔는데, 그 못지않게 남편도 해외 출장이 많아서 아이 돌보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상사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털어놨다. 출장은 가겠으나, 남편과 스케줄을 맞출 수 있도록 미리 플래닝을 해달라고.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니 문제는 쉽게 풀렸다. "여자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반드시 생기게 되죠. 그래도 절대 자신감을 잃으면 안됩니다. 하다보면 방법은 다 나오거든요. 문제점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남편이나 상사와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이해와 도움을 얻으세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있어야 지치지 않고, 현명하게 삶을 조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한국의 유능한 여성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회사와 선배들의 적극적인 서포트도 중요하다. 여성 인력이 80%에 달하는 로레알 코리아의 경우 모유 수유실이나 플렉시블 타임제 등 워킹맘을 위한 제도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걸로 유명하다. 작년에는 여성 친화 기업으로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배려를 받지 못하는 워킹맘이 아직 많은 게 현실이지만, 박원 상무은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한다. 사회도 회사도 점점 바뀌고 있으니까, 오늘은 힘들어도 내년이나 후년에는 더욱 쉬워질 테니까 말이다.
건강한 피부가 아름답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에게 정말 부러운 점이 보였다. 근사한 커리어도 이해심 많은 남편도 아닌, 그가 갖고 있는 '액티브한 젊음'이 바로 그것. 15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사회적으로 묵직한 지위까지 갖추었으나 20대처럼 생생하고 발랄하고 활기차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첫째, 건강할 것. 건강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커리어도, 인생도 없다. 두번째는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웃기. 세번째는 항상 찬물로 샤워하는 것. 수영 때문에 익숙해진 습관인데, 겨울에도 마지막에는 찬물로 샤워하면 피부에 긴장감이 생겨 탄력 있어진다. 네 번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얼굴에 온천수 뿌리기. 그는
라로슈포제의 미스트를 시시때때로 뿌리는데, 특히 잠자기 전에 뿌리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 다섯 번째는 패션을 좋아하는 것. 그는 평소에 멋쟁이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에게서 항상 듣고 주시한다. 스타일도 자주 바꾸는 편. 변화를 주면 점점 젊어진다. 워킹맘은 특히 자신의 스타일을 멋지고 자신 있게 가꾸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프랑스에서는 병원·약국 화장품이 시장의 20%나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이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아직 작은 시장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시장에서의 그의 목표를 물어보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비쉬가 한국에 약국 화장품으로 첫 등장을 했지요. 이젠 소비자들도 많이 교육되었고,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거에요. 저는 10명의 여성들에게 선호하는 화장품을 묻는다면, 약국이나 피부과에서 추천 받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쓴다고 말하는 사람이 3명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론칭 10년째를 맞은 비쉬는 캐치 프레이즈도 변경하며 코스메틱 뷰티 브랜드에 더 가깝게 변화를 시도 중이다. 박원 상무의 열정과 에너지가 어떤 나비 효과를 일으킬지 자못 기대가 된다.
기획 차윤경 | 포토그래퍼 박유빈 | 레몬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