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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은 닫고 귀는 활짝 열고 경청하라”

리빙센스 | 입력 2009.11.06 11:21

 




세대 차이는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것이나 그 간격을 좁히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세대 혹은 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소통의 능력을 부지런히 연마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꿈꾸는 웰에이징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따로 사는 둘째 아들 녀석이 오겠다는 날, 나는 간만에 찾아오는 연인이라도 맞이하는 기분이 된다. 하지만 오랜만에 온 녀석은 덤덤하니 있다가 기껏 한다는 소리는 지극히 의례적인 얘기뿐이다. 나는 지가 하는 일 얘기도, 집안의 소소한 얘기도, 내가 최근 본 공연 얘기도 하고 싶고…. 하지만 녀석은 흥미전무하다는 태도로 앉아 있다. 그러다가 뱉는 소리는 "그러지 마세요", "저건 왜 안 버리세요", 더 나아가 "그건 알아서 뭐 하시려구요"라는 부정적인 언급 정도다. 아들이 이럴진대, 며늘애들은 일러 무삼하리요!

하지만 어쩌다 제 형제들과 맞닥뜨렸다 하면 이건 얘기의, 그러니까 문자를 써서 말한다면 '소통의 바다'가 되고 '웃음의 바다'를 이룬다.

어디 자식뿐인가. 집 밖 생활 터전, 그러니까 사회에서 만나는 젊은이들 역시 비금비금, 거기서 거기다. 존경심 없는 존경어린 말투와 태도로 나를, 그러니까 노년을 깍듯하게 대한다. 그런데 알맹이 있는 얘기는 살짝 비껴가고 만다. 만약에 말이다, 증거를 제일로 치는 재판정에 간다고 하면, 저들은 아무런 하자가 없고 노인을 지극히 공경했다는 판결이 나올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만약에 말이다, 내가 재판장이라면 저들을 인종차별이나 남녀차별보다 더 대책이 안 서는 노인차별(ageism)주의자라고 판결을 내리겠다. 노인차별주의자라고 판결을 내린다 해도 뭐 하나 속 시원할 게 있으려나? 없다. 그러면 어쩌나? 별수 없다. '목 마른 놈이 샘 판다'는 속담대로 우리 노년들이 변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내 쪽에서 좋아하는 이성에게 다가갈수록 역으로 그 이성은 점점 더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심리를 적용시켜 본다. 마찬가지로 저들, 젊은 저들이 우리 노년들과의 소통에 시큰둥하고 얘기도 섞지 않겠다는데, 부등부등 우리 노년들 쪽에서 다가가 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다가가면 갈수록 역겨워질 젊은 저들을 가늠해보면 그렇다. 그러기에 자식들이란 크면, 배를 먼 바다에 띄워 보내듯이 자식을 떠나보내 놔야 하리(進水). 내가 만든 배를 먼 바다로 떠나보내고 나면, 그 배가 항해를 순조롭게 하는지, 풍랑을 만나는지 내 알 바 없지 않은가. 안 그러고 해바라기 모양 젊은 저들을 향해봤자 돌아올 리가 없다. 젊은이들과 내 자식들. 우리나라 기준에서 보면, 냉정해 보일 정도로 저들과 지내다 보면, 나는 노년 전문가(이런 호칭을 받을 만한지 의심스럽지만…)로서 단정하건대 저들이, 젊은 저들이 언젠가 슬슬 우리에게 다가오는 날도 있게 될 것이라는 거다.

요 지점에서 우리 노년들이 조심 조심해서 저들이 다시는 우리들에게서 도망가지 않을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안 그러구 우리 노년들이 그동안 고팠던 얘기, 수다, 특히 나 아픈 얘기, 젊어 나 잘했던 얘기 등등을 '때는 이때다' 하고 늘어놓다가는 젊은 저들이 이제는 정말 아주 도망갈까 저어스럽다. 오즉하면, 노인들이 한번 해볼 만한 가장 매력적인 도전은 '자기 과거를 미화시키지 않는 거'라고 한다잖는가.

내 입은 닫고 귀는 활짝 열어놓고서 저들의 얘기를 경청만 해주는 거다. 행여 들으면서 충고를 해주거나 더 나아가 반대를 하거나 혹은 지시하는 건 금기 중 금기다. 어쩌다 충고나 의견을 물어올 때가 오면, 그때나 그동안 아껴두었던 의견이나 충고를 한마디 말로 해두는 정도를 충실히 지켜 나가다 보면, 그런 때에 저들은 나의 팬이 되기도 하고 내 주위를 맴돌기도 하게 되리라.

그러려면 우리 노년들도 젊은 저들에 관해 뭘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고령 사회에서 평생 학습은 '그냥 하는 말'로 하는 정도가 아니다. 건전 사회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레토릭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수명은 길어졌지만, 그 옛날 우리가 배웠던 지식의 수명은 짧아지다 못해 이제는 이미 고종명(古終命)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만고불변의 인류 보편적인 지식이나 가치관은 빼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봤자 코호트가 다른 저들(태어나고 자라온 시대가 다른 무리)과의 완전한 소통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런 바람은 '자연의 소리'를 거스르는 것이라서 그렇다.

출처: 리빙센스
글|고광애(노인 전문가)
사진|정민우
진행|임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