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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끓이던 피해자 "급발진, 딱 걸렸어"

머니위크 | 지영호 | 입력 2009.11.02 11:46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전라

 




[[머니위크]벤츠 급발진 "제조사 책임' 판결이 주는 의미]
세차장을 나온 차량이 맹렬한 속도로 후진하며 건물을 들이받는다.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다시 주차해 있던 세차장으로 돌진해 담벼락을 무너뜨린다. 곧이어 다시 후진해 주차해있는 차 두대를 들이받고 다시 10여m를 달려 전방의 수입차를 휴지로 만들어버린다.

실제로 이 같은 운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후진 기어를 놓고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 다시 전진 기어로 바꿔 가속페달을 밟는 식으로 서너번을 반복해야 한다. 운전자는 세차장에 앙심을 품어서일까?

10월22일 경남 마산에서 세차를 끝낸 승용차가 갑자기 전ㆍ후진을 빠른 속도로 반복하며 차량 3대를 파손시킨 영상이 전파를 탔다.

차량 운전자는 세차장 종업원이었다. 단순히 세차를 끝낸 차량을 주차시키기 위해 후진 기어를 넣었다가 발생한 일이다. 영상에는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들어오는 미등의 불이 켜져 있었지만 차량은 광폭 질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급발진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인 셈이다.

◆제조사가 '결함 없음' 증명 못하면 배상

이전까지 이러한 급발진 사고가 발생해도 전적으로 운전자의 과실로 결론지어졌다. 법원이 급발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미 있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급발진에 대한 책임이 일정 부분 제조사에게 넘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 의미 있는 판결이 지난 9월30일에 있었다.

이날 수입차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인 메르세데스-벤츠(이하 벤츠)의 명성에 금이 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벤츠의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에 대해 법원은 피고에게 사고 차량과 같은 신차를 인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단독 송인권 판사는 조모(62)씨가 벤츠 판매사인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하자에 대한 입증 책임이 이를 주장하는 매수인에게 있지만 자동차처럼 고도의 기술이 집약돼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경우 일반인이 결함으로 인해 손해를 입증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면서 "소비자가 자신의 과실 없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사고가 일어났음을 입증한다면 오히려 제조업자가 자동차의 결함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자동차회사가 사고의 원인이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 아님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재판부는 조씨가 벤츠 수입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주)에도 낸 소송에 대해서는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기각 판정을 내렸다. 다만 한성자동차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어 최종적으로 벤츠가 부담을 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판결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상황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한승호 소비자원 상품1팀장은 "이번 벤츠의 급발진 판결이 가지는 의미는 운전자의 경력, 환경 등 상황적 판단으로 보인다"면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법원에서 처음으로 급발진에 대해 인정한 판결임을 감안하면 향후 급발진 관련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1년 전에도 급발진 홍역 앓아

벤츠가 국내외 차량 가운데 처음으로 급발진으로 진땀을 흘린 예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판결이 있기 불과 이틀 전에도 급발진으로 보이는 사고가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차장 카 리프트에서 벤츠 승용차가 갑자기 돌진하면서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벤츠의 급발진이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앞에서 벤츠의 최고급 모델인 S600 차량이 멈춰 있던 4대의 차량을 잇따라 들이받은 것. 이 사고로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운전석을 비운 상황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급발진에 대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재빨리 차량에 탑승해 제동을 하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피해자의 주장이었다.

반면 벤츠는 차량에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차량을 정밀 진단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고 운전자가 70% 가량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조사한 남대문 경찰서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급발진 특성상 재연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독일 벤츠 본사 기술진이 사건 조사차 서울로 파견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급발진 소송 대부분이 지는 싸움

한국소비자원에 들어오는 급발진 관련 상담건수는 연간 100여건 이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점차 감소 추세다. 올해는 10월 중순까지 모두 52건에 불과하다. 소비자원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보니 상담 건수도 줄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숱한 소송 가운데 급발진 책임을 제조사에 돌린 판결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 소송해봐야 돈과 시간만 낭비할 뿐 승산 없는 싸움을 할 필요가 있겠냐는 해석이다.

제조사가 급발진 논란에서 자유로워진 계기는 1999년 12월 국토해양부가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에 의뢰한 급발진 관련 실험에서 '자동차의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손을 들어주면서 부터다.

이후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시어머니를 잃은 탤런트 김수미 씨가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하는 등 소송을 낸 사고 당사자는 대부분 자동차회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대리운전기사의 도로 역주행으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서는 급발진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의 가능성을 이유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급발진 추정 사고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은 이번 조씨의 소송으로 인해 그동안 인정되지 않던 급발진 사고에 대한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되고 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급발진 사고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생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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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호기자 tellme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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