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뿐이었다. 특히 권총 사망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때 핵심 사안이 되는 사건 현장 유류품에 대한 과학적 감정의 진실에 관해서는 위원회도 특조단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외면했다. 1998년 2월24일 김훈 중위 사망 직후 현장에 들른 미군 범죄수사대는 김 중위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과 실탄, 탄피 등을 증거품으로 수거했다. 또 사망한 김 중위의 옷가지를 수거하고, 좌우 손바닥과 손등 등을 거즈와 면봉으로 닦아낸 뒤 이 현장 증거물들을 과학적 감식기관인 미국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미군범죄수사연구소)로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총기 발사자를 찾기 위해 첨단 과학 기법을 동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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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한 김훈중위의 아버지 김척장군이 군의 수사발표내용이 조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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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군범죄수사연구소의 현장 유류품 감식 결과는 타살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나왔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핵심 내용은 '김 중위의 머리에 쏜 권총은 근접사'라는 점과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화약 잔재흔이 검출되지 않고, 왼손 바닥에서만 검출된 것으로 보아 김 중위 스스로 발사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의하라'는 두 가지였다.
군 의문사위에 포진한 사건 관련자들
미군범죄수사연구소에서 1차 감식한 김훈 중위 유류품은 한국으로 되돌아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서 재감정을 했다. 이곳에서는 '변사자의 야전상의 좌우측 어깨 부위에서
무연 화약성분은 검출되나 팔 부위에서는 검출되지 않고, 좌우 손바닥 및 손등에서는(닦은 면봉을 보내오지 않아) 화약성분 검출 여부를 알 수 없으므로 제시된 증거물의 시험 결과만으로는 발사자가 변사자 자신인지에 대하여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최초 유류품을 감정한 미군범죄수사연구소에서는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았다고 볼 수 없다'고 과학적 결론을 내렸고, 한국 국과수의 재감정에서는 '(미국에서 돌아온 김 중위 유류품 중 좌우 손바닥과 손등을 닦은 면봉이 누락돼)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았는지 여부를 논단할 증거가 부족하다'라고 결과를 냈던 것이다. 두 전문 연구기관의 감정 결론의 핵심은 변사자가 스스로 쏘지 않았다는 것 또는 스스로 쏘았는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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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잠들지 못한 채 경기도 벽제의 한 군부대 영현 창고에 방취된 김훈 중위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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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방부 특조단은 이처럼 명확하고 과학적인 전문기관의 감식 결론을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 거꾸로 자살을 뒷받침하는 시험 결과인 양 왜곡 조작했다. 즉 수사발표문을 통해 "국과수
법의학부 물리분석과 이정인 등 3명이 재감정한 결과 김중위의 야전잠바 좌우측 어깨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김 중위가 사격하였음을 의미한다"라고 발표했다. 국과수 감정서 내용을 교묘하게 자살로 조작해 발표한 국방부 특조단은 이후 국회와 법원에 이를 증거물로 보냈다.
이 같은 조작 사항은 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유가족이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 특조단의 조사 서류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유족은 이를 근거로 지난여름부터 위원회에 '김훈 중위를 억지로 자살로 몰기 위해 국과수의 감정 결과까지 조작해 수사발표하고, 이를 국회와 법원에 제출하는 등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양인목 특조단장 등을 고발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난감해할 뿐 끝내 조사와 고발을 기피했다.
이렇게 명확히 드러난 특조단의 자살 조작 행위에 대해서조차 위원회가 나 몰라라 하는 데 대해 유족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진정인이 양인목 특조단장과 부검 군의관을 고발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과연 특조단이 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료를 내고 법원과 국회에 그 자료를 보냈다는 점만 가지고 범죄 근거로 보아 고발할 것인가 하는 점에는 진정인과 위원회의 판단에 차이가 있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총기 사망자의 자살·타살을 과학적으로 밝히고자 할 때 핵심 사안은 사망자의 권총을 누가 발사했는가를 규명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현장에서 초동에 미군이 수거한 각종 유류품과 총기 상태를 전문 기관이 감식한 결과는 김훈 중위가 스스로 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여긴다면 김훈 중위 사망 현장과 비슷한 상황을 재연해서 권총 발사 시험을 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군에서는 실제로 그런 시험을 3번 했다. 이런 과학적 총기시험 감식 결과 역시 '타살' 쪽으로 나오자 군수사 당국이 이를 슬그머니 묵살해버렸다.
특조단의 자살 조작 '범죄'에 눈감아
김훈 중위 사건 수사 과정, 그리고 국회의 요구 등으로 군에서 1998년 10월2일, 1999년 2월6일, 2000년 1월28일 총 3차례 총기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이 시험은 사건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즉 김 중위 사망현장과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종류의 권총을 발사하면 발사자 손과 피복 등에 어떤 화약반응과 뇌관 잔사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해보는 시험이었다. 3차례에 걸쳐 발사자 7명이 김 중위 사망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권총인 M9베레타로 시험 발사해 옷과 손에서 채취한 시료를 국과수에 보내 검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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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중위 사체와 권총의 거리가 50cm가 넘은 점도 자사로 볼 수 없는 근거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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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방아쇠를 당긴 7명 모두의 손에서 어김없이 바륨과 안티몬 등 뇌관 잔재물이 나왔다. 또 전원의 좌우 팔 부위에서 무연 화약이 검출되었다. 김훈 중위는 좌우 팔부위와 방아쇠를 당긴 오른손에 아무런 화약반응도 뇌관 잔사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과학적 실험 결과로도 확실하게 뒷받침된 것이다. 하지만 군 수사기관은 똑 같은 조건으로 실험할 때마다 100% 나타난 화약반응 결과와 김 중위 사망 현장에서 채취한 증거물들의 뇌관 잔사 시험분석 결과를 모두 묵살해버렸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과학은 은폐하거나 배척하고 군사작전식 자살몰이를 택한 것이다.
바로 이처럼 특조단이 뒤틀어버린 진실을 바로잡는 것이 위원회에 부여된 임무였다. 하지만 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조사를 제대로 벌이지 않았다. 국과수가 보내온 감정 서류마저 조작해 억지로 자살로 꿰맞춘 군 수사당국의 기존 주장과 국방부가 입맛에 맞게 구성한 법의학자들의 들러리식 주장, 그리고 노여수 박사의 타살 주장을 병렬식으로 나열한 뒤 특별히 어느 쪽 주장에 손들기 어려워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원회가 내심으로는 과거 군 수사당국의 자살몰이에 힘을 실어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위원회는 해외 저명 법의학자를 섭외해 김 중위 사건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을 묻는 작업을 추진했다. 당초 위원회가 후보로 잡은 해외 법의학자는 공교롭게도 김훈 중위 사건 부실 부검으로 국내외 법의학자들에게 질타를 받은 바 있는 부검 군의관과 관련 있는 인물이었다.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민간 법의학연구소였는데 이곳은 1999년 당시 자살 예단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김 중위 부검 군의관이 개인 서신을 보내 자살이라는 결론을 지지받고자 했던 곳이었다. 결국 유가족의 반발로 위원회가 추진한 마이애미 소재 법의학 자문은 무산됐지만 이는 위원회가 스스로 '국방부와 부검 군의관의 자살 결론' 수비대라는 불신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런 비판에 대해 위성국 조사과장은 "화약흔이 과학적으로 타살을 입증한다는 지적은 진정인 주장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김훈 중위 두정부에 나타난 혈종은 외부에서 가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라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만으로도 김훈 중위 사건은 위원회가 타살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무엇이 두려워서인지 '규명 불능'을 택했다. 이로 인해 유족의 깊은 상처는 또다시 덧났고, 위원회에 대한 전체 유가족의 불신은 깊어만 간다.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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