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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올림픽, 혁신은 없고 홍보만 무성

시사IN | 오윤현 기자 | 입력 2009.11.03 10:42

 




찬사 일색?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2009서울디자인올림픽(10월29일까지)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은 부드럽고 따스하다. "더 예쁘게, 더 재미있게, 더 쓸모 있게 그리고 다른 사람과 환경까지 생각하게 만든 물건들이 한자리에…"라는 문구도 보인다. 과연 긍정적인 메시지만 가득할까. 그 사실이 궁금했다.

↑ ‘월드디자인마켓’은 활기찼으나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기 어려웠다.

↑ 전시는 서울시 각 구청이 꾸몄다.

↑ 서울시가 ‘2010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고 그‘영광을 확대’하려 지난해부터 열고 있는 서울디자인올림픽.

입장은 수월했다. 복잡한 수속과 입장료 없이 입구에서 손만 쓱쓱 씻으면 '통과'였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좌우에 낯익은 글귀로 치장한 부스가 나타났다. 요즘 서울시가 잔뜩 선전하고 있는 '120 다산 콜센터'와 '여행(女幸)'을 홍보하는 공간인 듯싶었다. 아무리 휘둘러봤지만 디자인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아리송했다. 디자인올림픽이 '서울시 혹은 서울시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행사'라는 뒷말이 들리더니, 그런가 싶었다.

몇 걸음 더 들어서자 21년 전 올림픽이 열렸던 광활한 운동장이 펼쳐졌다. 수많은 흰 천이 공중에서 너울거렸고, 1층 트랙에는 누에를 닮은 거대한 에어돔이 엎드려 있었다. 좌우로 펼쳐진 2만여 관중석은 노란 국화, 폐비닐과 현수막, 폐품 조형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웅장하고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느낌. 어, 그런데 저건? 2층 난간에 또 '120 다산 콜센터'를 선전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흠….

우선, 2만55석 스탠드를 디자인한 < 에코 및 그린, 자연의 꿈 전시 > 부터 둘러보았다. 언론들이 '창의적이고(혁신적이고) 친환경 인식을 제고시키는 창조물'이라 소개한 작품이었다. 서울시 각 구청이 구역을 나누어 꾸몄는지, 각 구역 작품 앞에 구청 홍보 문구가 요란했다.

친환경 조형물의 실체

그런데 한 바퀴 돌아본 느낌은 무엇이 창의적이고(혹은 혁신적이고) 친환경적인지 알 수 없었다. 의자에 국화 화분을 앉히고, 우산을 쓸모없는 라면봉지로 디자인하고, 버려진 현수막 따위로 의자나 등받이를 씌우고, 스티로폼 상자로 산을 형상화하면 그게 창의적이고 에코 및 그린 디자인이 되는 건지 궁금했다.

스티로폼 상자 1만여 개를 고산준령을 형상화한 구청에 작품의 메시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쓰레기 제로를 보여주려 스티로폼 상자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을 해체한 뒤 그 상자를 재활용해 액자를 만들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폐품의 재활용쯤 되겠다. 그러나 담당자는 "작품을 폐품이 아니라 새 스티로폼 상자로 만들지 않았나. 결국 이 작품을 만드느라 지구 환경에 해로운 스티로폼 상자를 만여 개를 더 찍어낸 셈이다"라고 지적하자, 더 자세한 내용은 작가에게 물어보라며 말을 돌렸다(이 작품 제작비는 스티로폼 상자 구입비 등 5000여만 원이 들었다).

한 디자인 전문가는 "요즘 환경 디자인은 환경 파괴나 자원 낭비 등을 강조하거나 그 피해를 알리는 홍보(선전) 단계를 넘어섰다. 생태계의 구조와 순환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단계(에콜로지)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의 꿈'은 구시대 발상에 머물러 있고, 창의성과 이노베이션(혁신성)도 결여되어 있다. 관객과의 소통도 별로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라고 말했다.

행사를 준비한 서울시 공무원과 디자이너들을 생각하면 곱게 봐야겠지만, 이쯤 되고 나니 눈에 더 힘을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행사 이름이 디자인올림픽인 것도, 행사가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행사의 연원을 알고 나니, 디자인올림픽을 여는 의도가 더 모호했다. 2007년 10월, 서울은 국제산업디자인단총연합회에 의해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된다. 세계디자인수도는 이 단체가 디자인 잠재력이 뛰어난 도시를 2년마다 뽑는 제도인데, '영광스럽게' 서울이 그 첫 번째 도시로 뽑힌 것이다.

그 뒤 서울시는 서울을 그 명성에 걸맞은 도시로 만들고, 영광을 더 널리 홍보하려 다양한 디자인 사업을 펼친다. 디자인올림픽도 그중 하나였다.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들을 '올림픽 운동장'에 백화점 식으로 진열하면 올림픽이 된다는 발상도 우습다. 이 행사를 역사적이고 거대하게 치르겠다는 서울시의 무모한 의욕을 드러낸 치기어린 발상이라고나 할까. 현재 디자인올림픽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인 한 전문가는 "서울시 곳곳에 부스를 설치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쾌적한 환경에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 에코 및 그린, 자연의 꿈 >

다른 전시 내용은 어떨까. 서울시 좋은 간판전, 세계디자인문화전, 서울건축문화전 등이 열리는 관중석 밑 공간을 둘러보았다. 날이 춥고 시멘트 내벽이 드러난 탓인지, 전시장은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세계디자인문화전을 일별하고 나니 손발이 더욱 오그라들었다. 아니, 조롱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겨우 네팔·러시아 등 다섯 나라의 목각 인형과 목걸이, 머플러·귀걸이같이 시중의 수입상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품을 모아놓고 '세계'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서울시가 시민들의 미감을 얕봐도 너무 얕본다는 느낌이 들었다.불친철한 안내, 부실한 설명

< 세계건축디자인 초대전 > 의 일환으로 열리는 < dmy아시아 투어 2009 > 는 또 어떤가. '베를린으로부터 온 14명의 싱가포르·일본·타이완 그리고 한국 디자이너들'이란 부제처럼 작품은 다양하고 새로웠다. 그러나 그 수가 적었고, 몇몇 작품은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Prosolv e370e/1050'이란 제목의 작품을 보자. 상아색을 띤 오각형 모양의 공기정화기였는데, 어떻게 쓰는지 설명되어 있지 않으니 아름다움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목이 도움이 될까 싶어 들여다봤지만 더 알쏭달쏭. 진행 요원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몇 줄 되지 않는 안내문을 뒤적거며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 50years of Architectu re > 는 더 난해했다. 해외에서 들여온 듯한 정체불명의 모형 구조물들이 잔뜩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무엇을 모형화·형상화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설명문을 봤지만 온통 전문용어가 뒤섞인 영어여서 해독이 난감했다. 역시, 진행 요원에서 설명을 부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한글로 친절히 설명해놓을 수 없었느냐고 묻자, "시간이 촉박해서 그렇게 못했다. 어쩔 수 없다"라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도쿄 카미야하우스 등을 소개한 코너도 비슷했다. 설명은 영어 일색이었고, 모형 하나 없이 잡지 화보 같은 사진만 잔뜩 붙여놓았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한 회사원(30)은 "바보가 된 기분이다. 찬찬히 둘러봐도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알기 힘들다. 이런 사진은 인터넷에도 차고 넘친다"라고 말했다. 올해 디자인올림픽의 슬로건은 '디자인으로 불황 극복'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서쪽 에어 돔에서 열리는 '2009월드디자인마켓'을 장터 분위기로 꾸민다고 발표했었다. 과연? 서울시 말대로 실내는 마치 장터 같았다. 그런데 활기가 넘치고 창의적인 디자인이 가득한 장터 분위기가 아니었다. 마치 주말의 어수선한 대형 상가에 와 있는 듯했다.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한 여학생은 "마치 풍물시장과 밀레오레의 부스, 코엑스의 디자인대전을 짬뽕해놓은 듯하다. 우리나라 디자인의 비전과 이노베이션(혁신)을 보고 싶어서 왔는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 한·중·일 생활 문화, 일상에서의 休 > 와 < indEX:더 나은 삶을 위한 디자인 > 이 열리는 동쪽 에어 돔은 좀 나을까. < …일상에서의 休 > 에는 한·중·일의 생활 용품을 전시했는데, 마치 백화점의 인테리어 진열장을 보는 듯했다. 게다가 중국의 나무 의자와 오래된 장롱을 빼고는 각 나라의 전시품이 다 어슷비슷했다. 통역원에게 "무얼 비교해 봐야 하나? 각 나라 용품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라고 묻자 "우리는 만지지 못하게 하는 일만 한다"라며 자리를 피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디자인을 전시한 < index > 도 군데군데 불친절이 눈에 띄었다. 디자인(제품)을 사진과 짧은 설명만으로 소개하다 보니, 더러 그 디자인이 무엇을 뜻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안내 요원에게 '낙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발전기'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고 묻자, 판매용 책으로 제작한 < index > 를 꺼내어 구뒤적뒤적거렸다. 결국, 이 전시를 이해하며 보려면 그 책을 사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물론, 모든 전시가 어렵고 불친절했던 건 아니다. 곳곳에 배치한 해치상(像)들은 참신하고 유머러스했고, < 디자인 장터 > 의 옛 놀이 디자인은 정감 있고 기발했다. 특별전 < 아름다운 한글 주련전 > 은 한글의 새로운 쓰임새와 세계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또 여러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도 대부분 새롭고 기발하고 실용적이어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싶었다. 어린이를 위한 'I-디자인놀이터'와 '생각하게 만드는 놀이 기구'로 가득한 '상상어린이공원'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디자인올림픽은 서울시 예산 76억 이상을 들이는 행사치고는 전체적으로 미흡한 느낌이다. 행사 준비 과정을 이야기 들어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행사 기획에 참여한 한 외부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행사가 너무 많다보니 서울시디자인총괄본부가 일일이 다 못 챙긴다. 그러나 서울시 홍보와 관련한 행사는 세밀히 챙기는 듯하다."

기획에 참여한 다른 전문가는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전문가들이 합의가 잘 안되었다. '위'에서 결정에 내려보내는 것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시민을 위해) 내실을 기하기보다, (서울시의) 성과를 보여주려 준비한 행사도 더러 있다. 공무원들과 협의하면서 그들이 내실보다는 멋있고 아름답고 스펙터클한 것을 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디자인올림픽이 미흡하게 된 책임은 디자인을 이용해 시정 홍보 하려는 서울시와, 그들의 요구에 끌려가듯이 일을 처리한 행사 참여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있는 셈이다.

오윤현 기자 /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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