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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자율형사립고가 ‘대안’일까

위클리경향 | 입력 2009.10.29 16:06

 




ㆍ"사교육비 부담 해소 상당 도움" vs "서민층 진학 어려운 귀족학교"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전국 30개 외국어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외고의 특목고 지위를 박탈하는 대신 자율형사립고자립형사립고로 전환하도록 함으로써 학교 운영의 자율성은 보장해 주겠다는 취지다.

↑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 건물에 자율고로 선정됐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향신문>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줄기차게 비판해 온 진보진영 일각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김성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은 "일반고로 가는 게 최상의 해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율형사립고 전환도 선발권을 빼앗는다는 점에서 사교육비 부담 해소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자율형사립고가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는 물론 사교육비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되는 '이름만 바꾼 외고'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김용섭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위원장은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자율형사립고로 바꾸면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든다는 건 사기다"면서 "일반고 전환 이외의 해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 6월29일 사회공공성연대회의, 서울교육공공성추진본부와 함께 학부모·학생·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의 자율형사립고 추진에 항의해 삭발식을 하기도 했다. 전교조가 이처럼 강력하게 자율형사립고를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율형사립고는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자율형사립고는 교육청의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교육 과정과 교원 인사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받는다. 교육청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재단이 해마다 일정 기준(특별시·광역시 소재 학교는 5% 이상, 도 소재 학교는 3% 이상)의 전입금을 부담해야 한다. 액수로 따지면 평균 2억원 정도다. 학생 등록금은 일반고에 비해 세 배가량 올라간다.

외고에 비해 입학자격 조건 넓어져

전교조 서울지부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내년 전환 예정인 서울지역 13개 자율형사립고 가운데 절반가량은 광역시 소재 자율형사립고의 법정전입금 충족 기준인 5%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신청 단계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자율형사립고 전환 신청을 한 서울 지역 모 고등학교의 경우 신청 단계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어느 학교에서는 반대한 교사들에게 '자율형사립고 전환에 반대하는 당신의 뜻을 존중해 다른 학교로 옮겨주겠다'고 했다"면서 "연말과 연초 인사이동에서 같은 법인 내 중학교로 전보 조치되는 식으로 불이익을 받는 교사들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된 충남의 한 고등학교는 편법적으로 외국 대학 지원자를 위한 국제반을 운영하다가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면 전국 단위 모집으로 바뀌는 데다 등록금이 세 배가량 뛰기 때문에 이 지역 서민층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면서 "자율형사립고는 또 하나의 귀족학교"라고 비판했다.

자율형사립고는 내신 성적 상위 50%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지원 자격이 극소수 상위층 학생으로 제한돼 있는 외고에 비해 자격 조건도 넓고 시험은 아예 치르지 않는다. 사교육 유발 효과가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최민선 연구원은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문대를 향한 학부모들의 열망을 고려할 때 그 열망이 고스란히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 외고로 쏠릴 것이라는 진단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율형사립고가 초·중학생 사교육비 절감에는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입시 위주 교육의 병폐를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형사립고는 국민공통교과 과정의 50%를 학교 재량에 따라 편성할 수 있다. 김용섭 위원장은 "자립형사립고인 전주 상산고의 경우 국어를 제외하고도 영어와 수학 비중이 절반가량 된다"면서 "자립형사립고는 교과 편성에서 자율형사립고보다 제약이 심한 데도 이 정도다. 자율형사립고는 수능 교과 위주로 수업 시수를 크게 늘릴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지난 10월6일 권영길 민노당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18개 자율형사립고 지정 신청서'를 분석한 결과는 이런 우려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011년 개교 학교를 포함한 18개교 가운데 배제·숭문·신일 등 13개 고등학교는 수학 수업시간을 주당 28시간 늘릴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희·동성·한양대부속 등 9개 고교는 영어 과목 시수를 과거보다 2~12시간 늘렸다. 대성·동성·보인·중동 등 8개 고교는 음악·미술 등 예·체능 과목 시간을 크게 줄였다. 2011년 개교 예정인 대성고는 기존 예·체능 과목 시수를 총 24시간에서 12시간으로 절반이나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광고와 배제고는 공인인증시험 점수를 졸업 요건에 포함시켰다.

일반고로의 전환도 해법 아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외고의 자율형사립고 전환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쪽에서도 현행 자율형사립고 형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성천 부소장은 "지금은 자율형사립고를 보완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정두언 의원은 자율형사립고 지원 자격을 아예 푸는 것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재정 지원을 끊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자율형사립고 형태에서는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너무 높아 부유층 학교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데다 선발권을 빼앗는 대신 교과 편성 자율권을 주면 선발 경쟁은 완화될지 몰라도 입시경쟁은 피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김 부소장은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교과 과정 편성도 일정하게 통제하고 등록금 부담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 학원 강사 출신으로 학원계 생리를 잘 아는 이범 교육평론가는 정두언 의원의 안이 사교육비 유발 효과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등록금에 대한 명확한 제한이 없다. 지금은 일반고의 세 배로 시작하지만 점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이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자율형사립고는 교육 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한다. 이런 학교가 입시학원이 될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교육 다양성'이라는 명분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교육평론가는 "명분 싸움에서 이기려면 일반고에서 수월성과 다양성 교육을 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해 학점제로 운영하고, 상대평가 아닌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고가 문제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대안에 대한 논의는 강조점이나 방향이 조금씩 다르다. 외고나 학원가의 대응도 변수다. 외고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면 좀 더 오랜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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