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교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외고 입시가 사교육비 폭등의 주범이므로 '폐지 또는 변화'해야 한다는 국회의원의 주장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교육 관련 이슈는 전 국민의 관심사다. 이번에는 외고가 그 중심에 섰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외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채 수업하고 있는 서울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 (경향신문)
외국어고가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10월9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외고 입시가 사교육비 폭등의 주범이라는 생각은 여권 핵심부의 공통된 인식이다"면서 "지난 정부도 외고 폐지를 추진했지만 사교육 업계의 반발과 이들과 연루된 교육 관료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정 의원의 발언은 언뜻 '외고 폐지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후 외고 폐지는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연구 용역을 맡길 테니 그 결과를 보자"고 한 발 뺀 상태다.
외고가 설립된 것은 어학 영재 양성이라는 취지 때문이다. 그러나 외고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어학 영재'라는 개념에 대해 학계에서 부정적이었고, 외고가 입시 위주 학교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이들의 우려대로 외고는 점차 설립 취지와 정반대 결과를 낳기 시작했다. 일류대학 입학 정원에서 외고 졸업생 비율이 높아진 것. 학부모들은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외고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졌고, 외고 입학을 위해 사교육 열풍이 거세졌다.
참여정부 폐지 방안도 역풍에 실패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8학년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입학생 가운데 외고 출신 학생이 입학정원의 7.65%, 23.63%, 22.68%를 각각 차지했다. 2008학년도 전체 고교 졸업생이 58만1921명이었고, 외고 졸업생은 6930명(1.19%)이었다. 외고 출신 학생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진학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특목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비 역시 만만치 않았다. 2007년에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사교육 실태 및 대책' 보고서를 보면 특목고 진학 희망 초등생의 94.2%, 중학생 87.6%가 사교육에 참여했다. 연간 특목고 진학을 위해 연간 500만원 이상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비율도 초등학생 특목고 희망자의 28.6%(전체 14%), 중학생 특목고 희망자의 39.9%(전체 16.5%)일 정도였다.
또한 설립 목적과 어울리지 않게 자연계반, 의대진학반 등을 운영하면서 편법적인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외고도 생겨났다. 2007년 외고 출신 대학 진학 현황을 보면 5440명의 외고 출신 학생 가운데 2100여 명만이 인문학 계열로 진학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사회계열·교육계열·공학계열·의학계열 등으로 진학한 것. 이에 반해 과학영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과학고는 2006학년도 대학입시에서 83.6%의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해 외고와 다른 현실을 보여 줬다.
이에 참여정부는 2007년 10월 '고등학교 운영 개선 및 체제 개편 방안'을 발표해 특수목적고 폐지 방안을 내놓았지만 역풍에 휘말려 성공하지 못했다.
정두언 의원은 이번 국감을 통해 외고의 변화를 다시 주장한 것이다.
정 의원은 10월22일 '
초중등 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이번 개정안에서 고교의 종류를 크게 일반계고, 전문계고, 특성화고, 영재고로 나눴다. 특목고는 특성화고로 통합하고, 특성화고는 자율형 학교로 지정 운영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자율형 학교는 '자율학교'와 '
자율형사립고'로 나뉜다. 즉 외고는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형사립고는 현재 내신 기준 50% 이상의 학생이 지원하고, 추첨으로 선발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내신, 영어듣기,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 외고는 정두언 의원의 개정안대로라면 '추첨제'로 바뀌는 것이다. 외고의 전형을 없애고 추첨으로만 학생을 뽑는다면 사교육비 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성천 부소장은 "외고는 일반고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다.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되면 사교육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자율형사립고는 웬만한 아이라면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정 의원의 해법은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성화고·국제고로 전환' 목소리
그러나 외고를 폐지하거나 일반고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대학의 서열화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외고를 폐지하거나 자율형사립고로 바꾼다고 해서 사교육문제가 잡히는 게 아니다"면서 "차라리 사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공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등교육학부모회 정경희 사무국장도 "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면 찬성하지만 자사고나 국제고로 전환하는 것은 외피만 바꾸는 것"이라면서 "사교육 이야기를 하지만 자사고나 국제고 등은 일반고와 비교하면 사교육을 유발하는 학교이고, 자율형사립고는 등록금이 일반고보다 훨씬 높아서 학부모의 부담이 큰 곳"이라고 설명했다.
당사자인 외고는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외고 교장들은 '외고 폐지는 마녀사냥 해법'이라면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대원외고는 2011학년도부터 영어 듣기시험 폐지와 입학사정관 전형 확대 카드를 내놓았다. 뒤를 이어 한영, 대일,
이화외고 등에서 이 방안을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나 내신 비중을 확대하면 영어 듣기시험의 효과를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고가 내놓은 카드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방안이라는 평가는 드물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외고의 특성화고 전환에 대해 반대했다.
한국교총의 김동석 대변인은 "이 같은 안은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학교체제의 다양화와 학교자율화에도 역행한다"면서 "외고의 폐지보다는 원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운영 개선이 핵심이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의 입을 빌려 "정부가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 또한 이원희 한국교총 회장도 인터뷰를 통해 "국제고로의 전환은 사교육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바람직하며, 검토할 만한 사안"이라고 말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부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의 추진을 검토한 바 없다"면서 "외고 제도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을 올해 말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한국교총의 김동석 대변인도 "이 회장의 인터뷰는 외고의 선택권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었지 국제고 전환에 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교과부 "연말까지 포괄적 대책 마련"
외고의 국제고 전환은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학생부, 면접, 영어듣기의 합산 점수로 선발하는 국제고의 입시는 외고와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최홍이 서울시교육위원은 "외고의 국제고 전환 보도는 일부만의 희망일 것이다"면서 "국제고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외고 문제는 정두언 의원 말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입장도 그것 아니겠나"라고 설명했다. 정두언의원실의 이승기 보좌관도 "우리도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국제고 전환은 사실무근이라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의 개정안에 대해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자율형사립고 100개를 지정하면 연간 2440억원의 재정을 절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신청과 심사를 거쳐 선정된 자율형사립고는 3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 30개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다면 외고의 높은 브랜드 때문에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 모 국회의원 측은 "자율형사립고를 확대하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가 교감을 나눈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면 기존의 외고가 누리고 있던 특권을 자율형사립고에 전이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면서 "자율형사립고가 외고를 흡수하면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또한 자율형사립고의 경우 심사를 거쳐서 지정하는 것인데 외고를 바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다면 또 다른 특혜다"고 주장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외고문제의 해결만으로 사교육 폐단을 근원적으로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은 "교육을 이념의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 정 의원이 외고 폐지 발언을 했을 때 외고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했다는 생각에 찬성의 논평을 낸 이유다"면서 "하지만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한다고 해도 사교육은 잡기 힘들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부분적인 개선책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외고 듣기평가 포기는 눈 가리고 아웅" 정두언 의원의 발언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외고 폐지였던 것 같았는데 자율형사립고 전환 등으로 바뀌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선발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설립 취지에 맞는) 외고가 있는가. 원래 목적대로 외고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방식으로 선발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외고에 선발권을 준 것은 외고의 특성과 목적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선발권을 남용하고 있다. 우수 인재를 독식해 명문대학으로 가기 위한 특목고로 변질됐다. 선발권을 왜 외고만 주는가. 이젠 선발권을 회수해야 한다."
외고를 바꿔야 하는 이유로 사교육비를 들었다. 외고를 잡으면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내가 외고를 바꿔야 한다니까 학원연합회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외고가 사교육비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외고의 선발권을 바꾸면 사교육비 문제가 확실하게 잡힌다. 예전에 학원연합회 임원과 간담회를 했다. 그때 고등학교 사교육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 특목고만 잡으면 사교육비는 줄어든다고 이야기를 했다."
사교육비 폭증의 원인이 왜 외고인가.
"외고가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특수목적고로 운영되면서 외국어뿐 아니라 전 과목 내신 우수자를 선발했다. 심지어 수학, 과학 내신에 가중치를 두고 있다. 동일계 대학 진학률은 30%도 안된다. 외고는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지름길이 됐고,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 열풍이 분 것이다."
외고에도 공과가 있을 것이다. 공은 무엇이라고 보나.
"공이 있는가? 난 공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좋은 인재를 양성했다는데 인재를 양성한 것이 아니라 일류학생을 뽑은 것이다. 어떤 학교도 우수한 인재를 뽑으면 인재 양성을 못하겠는가. 더욱이 평준화 이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일류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의 외고는 그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외고에서 영어 듣기 평가 포기, 입학사정관제 도입 등 대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어떻게 하든 영어 평가는 계속할 것이다. 내신 전 과목 반영은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외고의 대안을 그대로 평가하면 영어 평가는 안하고 내신 평가만 하겠다는 것이지만 사교육비는 여전히 계속 높아질 것이다."
외고를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렇게 되면 외국어특성화 교육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교과목별로 20% 범위 안에서 자율 증감을 일부 허용하는 정도로는 외국어특성화 교육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외고 개혁안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용역을 줬으니 결과가 곧 나올 것이다. 나는 법안을 제출할 것이고, 한나라당 안에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토론할 것이다. 현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도 부합하는 것이니 합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고를 시작으로 방과 후 학교, 영어무상교육, 고교 내신 평가 방식 전환 등을 계속 내놓을 것이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