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9일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지난 7월 국회의 미디어법 개정안 처리에서 표결 과정은 문제가 있었으나 법안은 유효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7월 아수라장이 펼쳐지던 국회 본회의실 현장에 기자 신분으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2층 방청객석이었지만 그 소동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뵐의 소설 제목인 <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 가 떠올랐습니다.
뵐은
2차세계대전에 독일군 병사로 참전했습니다. 이 소설은 참전 체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제목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말을 원용한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죄의식 때문에 숨자 하나님은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숨었다고 대답합니다.
뵐은 테어도어 해커라는 한 문화비평가의 글에서 절묘한 제목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소설 앞부분에 "세계적인 참극이 많은 사람의 변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알리바이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다.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나는 세계대전에 참가했습니다.'"라는 문화비평가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참전했다는 것으로 세계대전에 대한 변명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뵐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메시지를 소설을 통해 전후 독일사회에 던진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 개인은 주인공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모든 일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이슈가 그냥 남의 것으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디어법 통과가 그렇습니다.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보탬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신종플루 거점 병원의 임시진료소인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줄지어 선 채 마스크를 착용하고 앉아 있는 모녀의 사진입니다. 어린 딸을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가슴이 저며옵니다. 과연 몇 시간을 기다린 것일까요.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신종플루 감염자가 되리라고 꿈엔들조차 생각했겠습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신종플루가 신문에서만 떠드는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 왔는데 어느덧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 이웃의 일이 되고, 우리 친척의 일이 되고, 마침내 우리 자신의 일이 됐습니다. 모이는 사람마다 우리 아이 친구가 걸렸다더라, 조카가 걸렸다더라, 아니면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려 걱정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 어머니의 눈빛을 기억합니다. 지금 그 아이는 완치돼 건강해졌겠지요. 그렇게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20만원에 이르는 돈을 들여 스스로 확진 검사를 받아야 하고, 거점 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허름한 컨테이너 진료소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이 울분으로 남지는 않았을까요. 그분들이 평소에 꼬박꼬박 낸 세금은 과연 어디로 갔습니까. 전염병조차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때 정부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모든 것은 결국 우리 일입니다. 신종플루도 그렇지만 미디어법과 4대강은 어떨까요. 누군가 몇년 뒤에 우리에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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